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생물교육 송수미
11월이 되어서야 알았다. 그 아이가 젖은 얼굴로 수업에 늦게 들어온 진실을. 그 반 아이들은 매번 수업에 늦는 ㄱ을 비난했다. 따돌림 위기 학생이라 교사는 늦지 말라 훈계만 했다. 이 즈음 교사는 그 반에서 일어난 사소한 다툼을 조사하던 중 당사자가 그린 '학급의 구조'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학급 서열을 그린 그림의 맨 아래에 ㄱ이 있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캐물으니, ㄱ이 가해자 집단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고 눈물범벅이 된 얼굴이 강제로 씻긴 채 홀로 교실을 들어왔다는 것이다. 3명의 교사가 진실 찾기에 나섰고 이 사건 외에도 다수가 서로 괴롭히고 피해를 입었고 대부분은 방관한 사실이 모두 드러났다.
학교폭력 문제는 이처럼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인데 파면 팔수록 늪이라 교사들 사이에 '모르는게 낫지, 괜히 건드렸다가 감당할 수 없다' 혹은 '아이들이 말 안하는데 어떻게 알아?'하는 패배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위 사건에서 교사가 보신주의에 빠지거나 기능주의적으로 접근해 '사소해 보이는 괴롭힘'만 처리했다면, 만약 교사가 학급의 구조에 대해 그려보라고 하지 않았다면, 눈물 감춘 아이의 진실이 드러날 수 있었을까.
이 사건의 경우 학교에서는 가장 강도가 컸던 성추행 사건만을 가지고 학폭법에 의거한 법적 절차에 따라 처리했다. 이 사건의 가해자가 아니었던 ㄴ은 다른 사건들에 대한 가해자이자 학급에서 가장 큰 권력을 행사하던 아이였음에도 처벌에서 빠졌다. 이것으로 위 사건의 가해학생 부모들은 항의를 했고 가해학생들 역시 반성보다는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모든 것이 밝혀지지도 해결되지도 않은 채 아이들이 진급했다고 하자. 아이들은 어떤 인생각본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갈까. '센 척(갑질) 해야 살아남는다', '정의롭고 착하게 사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다'와 같은 의식이 어느새 자리 잡게 된다면 학교는 더 이상 교육적인 공간이 될 수 없을 것이다. 학교폭력 문제에 대해 방어적 자세로 교사가 접근할 경우 학생들에게 또 다른 가해자의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으며, '어른들에게 말해도 소용없다'는 패배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
따라서 교사는 사명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진실화해'가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화해'는 가해자가 가해 사실을, 주변학생들이 방관 사실을 진정으로 반성함으로써 피해자가 치유되는 과정이다. 폭력이 일어나도 화해의 과정을 경험해야 아이들이 평화와 화목의 미래를 꿈꿀 수 있다.
화해가 이루어지려면 반드시 '진실'을 찾아야 한다. 교사가 설득력, 문해능력을 가지고 적절한 비밀 유지와 함께 아이들 스스로 진술할 수 있도록 접근해야 한다. 학급의 구조와 매커니즘을 통해 아이들이 모르는 것, 이해하는 것과 오해하는 것을 드러내고 가해학생과 피해학생, 주변 학생들의 각자 다른 해석을 진실에 가까와지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적절한 비밀 유지와 함께 학생들의 입에서 진술이 나오도록 하는 나름의 노하우가 있어야 한다.(김경욱, 학교폭력 해결 역량, 2015)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이 경우 따돌림사회연구모임의 박정은 선생님이 쓴 '사안 발생 시 사실 확인 방법'(따돌림사회연구모임 카페 http://cafe.daum.net/overtheddadolim)를 참고하면 효과적이다.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교사는 피해자 편이어야 하지만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될 수 있는 현실 앞에 '중립'을 지키는 겸손함을 지녀야 한다. 그리고 '진실화해'의 모든 과정이 가해자든, 피해자든 모든 아이를 이롭게 한다는 '교육적 확신'(김경욱, 위의 글)을 항상 마음속에 새기면 좋겠다.
폭력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학급 구성원 모두가 '진실화해'를 이루는 과정을 경험한다면 사회를 '강약(强弱)'으로 보고 손익 계산하는 아이보다 '선악(善惡)'으로 보고 정의를 꿈꾸는 아이들이 많아질 것이다.